[민기자의 취재노트] 아직도 시내버스 난폭운전? 그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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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의 취재노트] 아직도 시내버스 난폭운전? 그 뒷이야기
  • 교통뉴스 민준식 부장
  • 승인 2023.01.0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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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내버스, 불친절과 난폭운전으로 민원 빗발쳐
버스기사 탓하기 전에 배차간격 등 시스템 점검부터
인천의 한 버스운전기사가 준법운행 투쟁을 하고 있다. 교통뉴스 제보사진
인천의 한 버스운전기사가 준법운행 캠페인을 하고 있다. 교통뉴스 제보사진

지난해 인천지역 한 언론사에서 인천시내버스의 난폭운전과 불친절을 지적하는 기사가 나왔다. 시내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승객에게 폭언을 하는 등 불친절한 운전기사들이 무정차 통과, 법규위반 등 난폭운전도 일삼아 승객들이 불안감을 느낀다는 사연이었다.

시민혈세로 운영되는 시내버스의 서비스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뉴스다. 실제 민원도 빗발쳤을 만큼 승객들의 만족도는 바닥이었다. 인천 시내버스는 시가 운영비를 지원하는 준공영제로 운영되고 있다.

인천시는 각 운수사에 공문을 보내 소속 종사자들에 대한 교통안전운전 및 친절교육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언론보도가 나가자마자 취한 조치였다.

버스의 법규위반, 난폭운전과 불친절은 해묵은 숙제다. 막히는 길에서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끼어들기는 기본이고, 차선을 넘나들며 곡예운전도 다반사다. 최근 버스에 속도제한 장치를 달아 과속운전은 흔치 않지만 불법운전이 근절된 것은 아니다.

버스 운전자들이 왜 법규를 지키지 않을까? 그 이유는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시내버스의 배차간격은 미리 설정한 소요시간에 맞춰 투입되는 버스 대수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왕복 2시간(120분)이 걸리는 노선에 12분 간격으로 배차간격을 짜려면 10대를 투입하는 식이다.

문제는 설정한 소요시간이 실제 운행을 할 때와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회사가 정한 소요시간은 교통체증이 적은 시간대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입을 모아 주장하고 있다. 많은 운전기사들이 “정해진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실제 버스 배차시간을 관리하는 차고지에서는 차가 늦게 들어오면 기사들을 재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처럼 벌금을 매기거나(감봉) 불이익을 줄 수는 없지만, 여전히 기사들을 압박한다는 것.

인천시 모 운수사에서 8년째 같은 노선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이명호 기사는 현재 자신이 운행하는 노선을 회사가 정한 시간 내에 운행하려면 법을 지키면서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배차시간과 로테이션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기사들이 어떻게든 맞추는데 그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한다.

이 기사가 밝힌 시간을 맞추는 비결은 끼어들기 과속 등 위법운전과 함께 승객을 기다려주지 않고 정류장에서 정차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한다. "저희들도 사람이기에 정류장에서 지체하게 되면 조바심이 생겨 승객들께 불친절 한 경우가 많다"고 이 기사는 하소연 했다.

핑계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시간이 모자라다는 말은 흘려듣기가 어렵다. 시간에 쫓겨 바쁠 땐 차고지에 들어와 화장실 한 번 갈 시간도 없이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고 한다. 일정시간 운전 후 줘야하는 휴게시간 따위는 지켜지지 않는다.

이 기사에게 법규를 모두 지키고 승객들을 안전하게 승하차 시키면서 바쁜 시간대에 운행하면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리는지 물었더니 최소 30분은 더 걸린다고 답했다. 이렇게 늦게 들어오면 배차시간을 맞춰야 하는 회사 담당자에게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이명호 기사는 이 같은 내용으로 인천시, 국토교통부 등 관련 기관에 수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의 버스가 운행시간을 준수하고 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것.

이 기사는 운행시간이 너무 과도하니 현장 조사를 해 운행횟수를 줄여서라도 이 부분을 개선해달라는 민원을 넣었지만, 당국은 회사 측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선할 사항이 아니라는 답변을 보냈다. 현장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명호 기사는 현재 준법운행 캠페인을 하고 있다. 법규를 지키고 승객들을 기다려주면서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 평상시는 시간이 모자라지 않지만 출퇴근시간대에는 3-40분씩 늦게 운행한다고 한다. 차고지에 들어오면 30분 휴식을 취하는 근로시간 준수 운동도 하고 있다.

준법투쟁 중인 버스기사가 차내에 호소문을 걸었다. 교통뉴스 제보사진
준법운행 중인 버스기사가 차내에 호소문을 걸었다. 교통뉴스 제보사진

이 기사는 “회사는 저를 못마땅히 여겨 언제 잘릴지 몰라요. 하지만 이제는 근절되야죠"라는 자조 섞인 말을 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회사 입장에서는 배차간격이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에 이 기사의 준법운행이 마뜩찮을 것이다.

버스를 운행하는 회사 측의 사정도 있다. 모든 기사들이 배차시간에 뒤쳐지지 않도록 하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더 많은 편수를 편성하고 인원과 버스를 더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금과 지원금은 한정돼 있는데 마냥 인원과 버스를 늘리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운행횟수를 줄이면 시민들은 차를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장에서는 운행횟수를 줄이더라도 주어진 조건에서도 환승 제도가 있기에 노선 길이를 조정하여 시민불편을 최소화하면서 보다 여유로운 운행시간을 주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버스업체들의 사정도 있지만 이를 빌미로 시민의 안전이 위협을 받을 수는 없다. 어차피 요금을 받아서는 운영이 안 돼 세금으로 지원을 받고 있는데 회사의 운영이 방만한 것은 아닌지 철저한 검증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안전과 편의다.

불친절, 과속과 난폭운전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서울 시내버스는 버스 운전사들의 처우가 개선되고 준공영제가 도입되면서 크게 개선됐다. 고등학생 시절 버스기사에게 매일 욕을 먹으면서 버스를 타던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런 운전사는 서울시에는 거의 없다.

그런데 아직 다른 지자체에서는 이런 악습이 남아있는 모습이다. 지금 인천 시내버스가 딱 그렇다. 버스기사의 일탈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런 시스템이 부실하기 때문이 아닐지 시 관계자들은 고민을 해볼 일이다.

시민들의 민원에 놀라 버스회사에 공문만 내려 보낼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 나와서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기사들의 실태를 파악해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여객기 조종사는 일정시간 이상 조종을 할 수 없도록 돼있다. 조종사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수십 명의 안전을 책임지는 버스기사도 이런 룰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이명호 기사는 인터뷰 말미에서 "노선운행시간을 늘리면 운행횟수가 다소 줄어들어 시민이 불편을 느낄수 있지만 운행을 하루 1~2회 줄인다고 시민들의 불편 체감정도는 미비하며, 이 부분도 과도한 노선 거리를 줄이고 환승이 연계되게 하여 실질적인 여유노선운행시간을 부여하면 서비스질적향상과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원과 자원 투입에 난색을 표하는 버스회사가 이를 개선하도록 하려면 유연한 노선운영과 더욱 철저한 관리감독, 그리고 필요하면 보조금 추가지원이나 요금인상이 필요할 것이다.  대중교통의 큰 그림을 짜는 당국의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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