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의 뇌피셜] ‘검은 유령’ 팬텀에서 시작된 롤스로이스 ‘블랙배지’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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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의 뇌피셜] ‘검은 유령’ 팬텀에서 시작된 롤스로이스 ‘블랙배지’의 유래
  • 교통뉴스 민준식 부장
  • 승인 2021.10.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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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신형 블랙배지 공개 앞두고 헤리티지 소개
롤스로이스  검은색의 헤리티지가 공개됐다. 사진=롤스로이스 컬리넌 블랙배지/롤스로이스모터카
롤스로이스 검은색의 헤리티지가 공개됐다. 사진=롤스로이스 컬리넌 블랙배지/롤스로이스모터카

롤스로이스모터카가 이달 새로운 블랙 배지(Black Badge) 모델의 공개를 앞두고 블랙 배지 관련 헤리티지를 소개했다.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창업자인 C.S. 롤스와 헨리 로이스, 두 사람의 성(姓)을 따서 지어졌다. 헨리 로이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흙수저 엔지니어였고 C.S. 롤스는 귀족 집안의 금수저 출신이었지만 편한 삶 대신 레이싱과 비행기 조종 등 모험적인 삶을 택한 별종이었다.

전통을 고집하고 답습하는 고루한 영국의 전통을 깨는 도전장을 던진 두 사람의 시도에 사람들은 훗날 ‘교란자(disruptor)'라는 이름표를 줬는데, 이는 질서를 깨트리는 반항아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일궈낸 선구자라는 찬사가 된다. 그리고 롤스로이스는 대범하고 도전적이며 반항적인 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고급차 하면 검은색이라는 비공식적인 공식은 롤스로이스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롤스로이스의 플래그십으로 여겨지는 팬텀(Phantom)은 검은색 옷을 입은 유령이라는 뜻이다.

검은색은 오래 전부터 권력, 권위, 힘의 상징이었다. 강렬하고 본질적임과 동시에 우아함과 자신감, 절제와 단순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과시와 현란함, 관심을 갈구하는 태도와 상반되는 느낌을 지니며, 미스터리하고 비밀스러운, 그리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검은색 유령처럼.

검은색의 전통은 21세기에 와서도 이어진다. 2016년 출시한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라인업은 개성, 자기표현, 창조성, 인습 타파의 정신을 궁극의 형태로 표현한다. 외장 마감에는 제한이 없지만 색상은 오직 검은색 한 가지다. 롤스로이스는 검은색으로 이뤄낸 오퓰런스(Opulence)를 1933년부터 시작했다.

 

1933년형 팬텀 II 컨티넨탈(94MY): 이반 에버튼의 작품

디자이너 이반 에버튼의 프로토타입 기반의 1933 팬텀 II 컨티넨탈(94MY). 사진=롤스로이스모터카
디자이너 이반 에버튼의 프로토타입 기반의 1933 팬텀 II 컨티넨탈(94MY). 사진=롤스로이스모터카

이 차는 디자이너 이반 에버든(Ivan Evernden)이 주문한 팬텀 II 컨티넨탈(26EX)에서 시작됐다. 당시 흔치 않던 장거리 크루징 용으로 특별히 설계됐으며, 4명이 앉을 수 있는 컴팩트한 실내의 세단 바디를 갖췄다.

무게배분을 위해 러기지백 모양의 트렁크 뒤에는 스페어 타이어 두 개가 달렸고, 강화된 리프스프링과 브레이크가 적용된 섀시 프레임 위에 당시 코치빌더 바커&컴퍼니(Barker & Co)가 만든 바디가 얹혀 고속주행성능과 제동성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26EX는 생산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에번든이 프랑스 비아리츠 콩쿠르 델레강스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롤스로이스는 양산을 결정했고, 롤스로이스의 섀시에 여기에 코치빌더와 고객들이 자신만의 디자인 취향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1933년 94MY가 탄생했다. 94MY는 조절 가능한 앞자리 버킷 시트, 한 쌍의 앞유리 와이퍼, 옆유리 위에 위치한 플러시 피팅 방향지시등과 같이 당대에 흔치 않은 요소들을 탑재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차체는 물론 올 블랙 검은색으로 마감됐으며, 갈색 가죽, 밝은 갈색 파이핑, 카펫과 천장 간의 조화, 고광택 우드 비니어를 패키지로 하는 주문을 받아 제작됐다. 고성능과 최상급의 승차감, 특별한 방식의 비스포크가 결합된 94MY는 1930년대에 시작된 블랙배지의 시작이다.

 

1959년형 팬텀 V(5AT30): 헨리 왕자의 팬텀

독수리 엠블렘이 적용된 영국 헨리 왕자의 팬텀V(5AT30). 사진=롤스로이스모터카
독수리 엠블렘이 적용된 영국 헨리 왕자의 팬텀V(5AT30). 사진=롤스로이스모터카

1959년 실버 레이스를 대체한 팬텀 V는 거대한 리무진이다. 이 중 1960년 출고된 5AT30 바디는 코치빌더 코치빌더 제임스 영(James Young)의 PV15 디자인에 기반한 주문제작 차체로 헨리 왕자(HRH The Duke of Gloucester)의 애마로 알려져 있다.

헨리 왕자는 독특한 도색 기법과 독특한 장식으로 자신의 애마를 주문했다. 차량 윗면은 무광 블랙, 옆면은 유광 블랙으로 조합됐으며, 자그마한 백라이트, 거대한 안개등, 도어에 장착된 사이드미러, 뒷창문 미닫이 셔터, 스테판 그레벨(Stephane Grebel) 스포트라이트, 루카스 R100 헤드램프 등이 적용됐다.

롤스로이스의 전통인 환희의 여신상은 헨리 왕자의 공식 직함인 글로체스터 공작의 상징인 비행하는 독수리 피규어로 대체됐다. 또한 롤스로이스의 전통인 홀더에 꽂는 우산이 처음으로 주문 제작돼 지금은 모든 모델에 기본 적용되는 사양이 됐다.

 

1965년형 팬텀 V(5VD73): 비틀즈 존 레논의 팬텀

존 레논의 올블랙 팬텀V(5VD73)이 버킹엄 궁에 들어가는 모습. 사진=롤스로이스모터카
존 레논의 올블랙 팬텀V(5VD73)이 버킹엄 궁에 들어가는 모습. 사진=롤스로이스모터카

1964년 12월, 세계적인 그룹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팬텀 V를 주문했다. 모든 사양이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됐으며, 존 레논은 차체의 모든 곳은 블랙으로 마감하라고 주문했다.

뮬리너 파크 워드가 제작한 레논의 팬텀 V는 레논의 주문대로 올블랙으로 마감됐다. 심지어 유리창도 요즘은 흔한 검은색 틴팅이 돼 출고됐다. 다만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그릴과 환희의 여신상은 전통의 스털링 실버 마감을 고수했다. 존 레논도 롤스로이스의 전통을 존중했을 것이다.

실내도 모두 검은색으로 마감됐다. 시트는 물론이고 바닥과 패널까지 검은색으로 마감됐고, 검은색 러기지 가방 7개도 함께 주문했다. 뒷자리는 미끄러지지 않게 검은색 카페트 재질로 마감됐다고 한다. 여기에 라디오, 이동식 TV도 설치됐으며, 훗날 레논은 레코드 플레이어, 무선전화,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도 장착했다.

레논은 그의 검은 팬텀을 노란색 바탕에 꽃과 소용돌이 무늬, 황도 12궁 문양 등 당시 히피 문화를 반영한 파격적인 색으로 다시 칠했다. 파격적인 변화로 논란도 됐지만 훗날 이는 항상 도전하는 롤스로이스의 헤리티지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에 들어와 자동차는 한꺼번에 많이 ‘찍어내는’ 대량생산 체계로 변모했지만 롤스로이스는 고객의 주문에 맞춰 생산하는 비스포크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 방식을 고수하는 고루한 정책일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것으로 모두 표출할 수 있는 도전정신을 잇는 롤스로이스의 철학이기도 하다. [교통뉴스=민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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