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어쩌다 이지경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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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어쩌다 이지경이 됐나?
  • 교통뉴스 민준식 부장
  • 승인 2018.07.04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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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으로 얻은 명성, 기내식으로 먹칠해
늦게 뛰어든 아시아나, 서비스와 기내식으로 성장
신메뉴 개발, 특화된 서비스로 국내외 찬사 이어져
모그룹 부실이 발목 잡아....오너 판단 잘못해 위기
위기상황에서 미숙한 대처로 화 키워...이미지 먹칠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 80대의 중형급 항공사로 성장했다. 아시아나의 A380기. 사진: 민준식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이라는 대형 항공사가 군림하고 있는 국내 항공시장에서 차별화된 서비스와 친절함, 훌륭한 기내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90년대 말, 대한항공이 잇단 추락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이 신흥시장으로 부상한 중국노선을 선점한 것도 큰 이유다.
 
비교적 적은 노선과 기재를 가지고도 이용객들에게 찬사를 받았던 가장 큰 비결이 친절한 승무원과 맛있는 기내식이었다. 특히 세계적인 명품항공사 싱가포르항공을 벤치마킹한 서비스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영국의 항공사 평가기관인 SKYTRAX는 아시아나항공의 서비스와 승무원을 세계 최고라고 치켜세우며 몇 안 되는 5성급 항공사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기내식은 퍼스트, 비즈니스석은 물론 이코노미석 음식도 푸짐하고 맛있다는 승객들의 찬사가 이어졌고 불고기와 쌈장, 야채 등을 곁들인 ‘영양쌈밥’은 히트상품이 되었다.
 
당시 아시아나는 칭찬이 자자했던 기내식을 직접 만들었고, 후에 이 알짜사업을 비싼 값에 독일 루프트한자항공 산하의 세계적 기내식 케이터링업체인 LSG에 넘겼다. LSG는 큰 돈을 들여 국내에 기내식 공장을 지어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국내 취항하는 외항사에도 공급해 큰 돈을 벌게 된다.
 
파리-인천 구간에 제공된 아시아나의 기내식. 사진: 민준식
 
기내식 사업은 까다로운 위생규정과 검역, 통관문제 등 수많은 규제가 있어 제조와 유통이 복잡하고 납품 단가가 높아 이익이 많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단 공급처를 확보만 하면 매출의 3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낼 수 있어 많은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기도 하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찰을 챙기고 알짜사업을 글로벌업체에 넘기고, LSG는 국내 기내식 시장의 절반 이상을 독식해 짭짤한 이익을 챙기게 된다.
 
그런데 잘 나가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대우건설 인수 등 무리한 사업 확장을 펼치다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알짜기업들을 팔아 생존을 모색하게 된다. 기내식 사업도 그래서 외국계에 넘긴 것이다.
 
지난 15년 가까이 LSG와의 관계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그룹을 재건하려고 백방으로 뛰던 그룹 오너 박삼구 회장이 무리수를 두게 된다. 금호타이어를 되찾기 위한 급전이 필요했던 박회장은 기내식 파트너 LSG에게 투자 제안을 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에 신규 투자를 하면 기내식사업을 계속 맡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LSG측은 아시아나항공에 2천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내식 사업을 계속 함으로써 얻을 이익이 워낙 크기에 선뜻 내민 제안이다.
 
그런데 금호그룹은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중국의 하이난항공이 소유한 스위스 계열의 ‘게이트고메스위스’라는 케이터링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국내 설립비용의 40%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생긴 ‘게이트고메코리아’가 아시아나항공에 30년간 기내식을 공급하는 조건이다.
 
이와함께 하이난항공의 모그룹인 HNA그룹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인 금호홀딩스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1,600억 원어치를 사들이게 된다. 금리 0%, 만기 20년 조건이다. 20년동안 1,600억원을 무이자로 빌린 셈이다. 그리고 이 돈은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총알이 되었다.
 
결국 더 많은 돈을 아시아나항공을 위해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버리고 투자금을 맘대로 쓸 수 있게 돈을 빌려준 쪽을 택한 결과가 됐다. 논란의 여지가 있고 비난도 받을 수 있는 경영행태다. 결국 금호타이어는 되찾지 못했다.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HNA그룹과 아시아나가 공동 투자해 짓고 있던 기내식 공장이 공사 중 화재로 완공이 3개월 늦어지게 된 것이다. 기존 LSG와의 계약은 6월로 끝나게 됐는데 새 공장이 완공되지 않아 기내식 공급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이미 말이 돌았다.
 
아시아나항공은 부랴부랴 소규모 기내식 업체인 샤프도앤코와 3개월 공급계약을 맺었으나 아시아나항공의 필요량의 10%에 불과한 생산능력을 가진 회사에 일을 맡겼다는 것은 대형사고가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원래 계약이 끝난 LSG는 화재사고 후 아시아나로부터 임시로 계약을 3개월 연장하자는 제안을 받고 실제 협의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시아나측은 계약주체를 새 업체인 게이트고메코리아와 LSG 간 맺도록 하는 재하청 구조로 할 것을 요구해 LSG가 이를 거절해 결렬됐다는 후문이다.
 
결국 기내식 좋기로 유명했던 항공사가 기내식을 제공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말도 안 되는 재벌기업의 상도를 무시한 경영행태와 무모한 갑질이 빚은 대참사다.
 
지금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 내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FSC(대형항공사) 서비스의 기본인 기내식을 못 주거나 이를 싣지 못해 줄줄이 출발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고, 친절하기로 유명한 아시아나의 승무원들은 온 몸으로 승객들의 불만을 받아내고 있다고 한다.
 
오너의 잘못된 판단과 경영으로 좋은 이미지의 항공사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된 직원들은 이유 없이 육탄전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가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될 기미도 없다고 전해진다.
 
이는 비단 아시아나항공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너의 전횡과 갑질, 정도를 걷지 않는 경영행태 때문에 돈 많이 번 우리나라 부자들은 부러움과 존경 대신 질타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짧은 시간 고속성장을 이뤄낸 우리나라 재벌체재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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