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벨로스터 N 직접 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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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벨로스터 N 직접 타보다
  • 교통뉴스 민준식 부장
  • 승인 2018.05.03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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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의 M만큼이나 짜릿한 현대의 N
드라이빙 머신이 하나 나왔다. 고성능차로는 낯선 이름의 제조사에서 만들었다.
 
 
성능 보다는 가성비, 달리기 보다는 일상의 편안함과 무난함을 추구하는 자동차 회사에서 드라이버의 피를 끓게 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머신을 만들어냈다.
 
자그마한 해치백 차량에 19인치나 되는 휠이 달렸다. 알루미늄 휠 바깥쪽으로 얼마 안 되는 고무(타이어) 옆면에는 피렐리(Pirelli) P Zero라는 영문이 박혀 있었다. 뒷유리 위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려 있었고 범퍼 양쪽으로 달린 배기구는 어린 아이 허벅지가 들어갈 만큼 컸다.
 
시동을 걸자 으르릉 거리는 배기음이 심상치 않았다. 커다란 배기구만큼이나 커다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악셀러레이터를 밟자 우렁찬 소리를 내더니 페달에서 발을 떼자 갑자기 파팍 거리는 기관총 소리 같은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매니아라면 너무나 잘 아는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n)이 바로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차 자랑을 했다. 독일 억양이 강한 영어로 코너링 악동(Corner Rascal)의 강력한 주행성능을 일상에서도 쉽게 즐기면서 서킷에서도 극한의 주행을 즐길 수 있는 벨로스터 N의 팬(Fan)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프리센테이션이 귀에 들어왔다.
 
“비어만 사장님! 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님의 팬이었습니다!”라고 속으로 외치며 남양연구소 고성능 시험주행장에서 펼쳐진 동승 및 시승을 짧게나마 하면서 N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벨로스터 N은 수동 모델만 출시된다. 엔진과 변속기의 매칭과 최적화를 오직 수동변속기에만 맞추어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연구소 직원은 말했다.
 
주행시험장 구석에 마련된 미니 서킷은 독일 뉘르부르크링의 축소판이라고 테스트 드라이버는 알려줬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타이트한 코너를 빠른 속도로 돌아나갔다. 빠른 속도로 도는데도 신기하게도 앞이 밀려나가지 않고 오히려 뒤가 미끄러지는 드리프트 현상이 나왔다.
 
굽은 길에서 밖으로 밀려 나가지 않고 안으로 파고드니 시간을 줄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차체의 거동이 매우 역동적이고 몸동작이 가볍다. 기자 포함 세 명이나 탑승했는데도 달리기는 경쾌했다.
 
이어서 슬라롬과 헤어핀 체험, ‘무스테스트’라 불리는 급차선 변경 코스, 기어를 바꾸며 급가속을 하면서 팝콘 튀기는 배기음을 즐기는 코스, 기어를 아래로 내리며 엔진 회전수를 자동으로 보정해주는 레브매칭 체험 등 꽤나 다양한 체험코스에서 이 차를 직접 맛볼 수 있었다.
 
일전에 시승했던 벨로스터 1.6T와 비교해 기본적은 성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한계가 몇 수 위다. 훨씬 빠르게 달리고 돌고 설 수 있었고 차체 강성도 훌륭했다. 성인 세 명이 탔음에도 한 명이 탑승한 1.6T보다 훨씬 경쾌했다. 차가 기우는 롤링, 피칭 따위는 없었다.
 
피렐리 P-제로 타이어의 접지력은 명불허전이었다.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고 카펫 위를 뛰어다니듯이 도로를 움켜쥐고 달리고 돌고 섰다.
 
스티어링은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묵직했다. 현대차에서 만든 전동식 스티어링의 이질감을 여기서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브레이크도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 독일 고성능차처럼 페달이 밟히는 깊이는 짧고 단단했다. 브레이크는 강하고 정확했다. 급제동을 해도 차체가 전혀 앞으로 쏠리지 않았다. 서스펜션과 브레이크의 밸런스가 기존 현대차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조율됐다.
 
가장 압권은 수동변속기의 변속감이다. 외국 매체에서 좋은 수동변속기를 칭찬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인 'crispy(바삭)‘한 변속감이 일품이다. 스트로크는 짧고 레버가 제자리를 찾아들어가는 느낌이 절도 있고 빠릿빠릿했다.
 
오랜만에 수동차를 운전해본 기자도 빠르고 쉽게 변속할 수 있었고 변속미스도 없었다. 기어 레버가 들어갈 때의 손맛은 최고의 변속감을 가졌다는 토요타 86에도 뒤지지 않았다. 다만 클러치의 체결감이 좀 얌전했다. 클러치가 붙는 동작이 너무 부드럽고 시점이 모호해 스포티한 이 차에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기어를 내릴 때 엔진 회전수를 미리 올려줘 낮은 단에서의 rpm에 맞춰줌으로써 부드럽게 기어가 들어가게 해주는 레브매칭 기능도 체험해봤다.
 
고속으로 달리다 코너를 만날 때 속도를 줄이며 미리 기어를 내리게 되는데, 이때 기어를 내리면서 클러치를 체결하면 rpm이 급상승 하면서 차가 울컥거리게 된다. 이를 막고자 엔진 회전수를 내리는 단 회전수에 맞춰주는 레브매칭을 해야 한다.
 
일반 수동차의 경우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면서 왼발로 클러치를 밟은 상태에서 기어를 내리고 브레이크를 밟은 오른발을 꺾어 발꿈치로 악셀러레이터를 밟아 rpm을 높이는 ‘힐앤토’ 테크닉을 써야한다.
 
장황하게 설명한 것처럼 ‘힐앤토’는 고난이도의 운전기술이다. 벨로스터 N은 이런 기술을 쓸 필요 없이 차가 다 해주는 기능을 갖춰 운전을 한층 재미있게 해준다. 속도를 줄이며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내리자 엔진 회전수가 즉각 상승한다. 이때 바로 클러치를 떼면 동력이 연결되며 부드럽게 기어가 들어가면서 엔진브레이크가 걸린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레브매칭 기능이 아주 빠르지는 않아서 기어를 내리고 rpm 상승이 다 되기 전에 너무 빨리 클러치에서 발을 떼면 차가 살짝 울컥거리기도 했다.
 
악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면 푸드득 거리는 소리는 배기음이 큰 스포츠카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다. 벨로스터 1.6 모델도 이런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벨로스터 N은 그 소리가 크게 부각되어 있다.
 
팝콘을 튀기는 소리라고도 하는데 소리의 크기는 총 쏘는 소리만큼이나 크다. 연료 분사량을 늘려 엔진 내에서 연소되지 않은 연료가 배기관을 타고 머플러까지 와, 뜨거운 열에 폭발하면서 내는 소리라고 한다. 그리고 이 소리를 내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엔진 연료 분사량과 점화타이밍, 소음기 유량까지 철저히 계산한 고도의 엔지니어링을 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일반 벨로스터에 장착돼 스피커에서 가상 배기음을 내는 ‘사운드 제네레이터’ 따위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순수한 스포츠 배기음이 스티어링을 감아쥐고 기어를 바꾸고 오른발에 힘이 가도록 만든다. 다소 앙칼지고 거친 엔진음을 가진 세타엔진 특유의 소음이 짜릿한 배기음에 묻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유사 스포츠카’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던 현대자동차에서 ‘진짜’ 스포츠카가 나왔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가속성능, 코너링, 브레이크, 차체 밸런스 등 어느 하나 스포츠카로서 떨어지는 부분이 없다. 게다가 환상적인 배기음까지 더해져 정말 매력적인 머신이 탄생했다.
 
오늘 체험행사에는 수동변속기 차를 운전할 줄 몰라 아예 운전석에 오르지 못한 기자들도 꽤 있었다. 자동변속기 장착율이 99%를 넘기고 있는 우리나라 시장에서 수동변속기만 출시하는 것은 어쩌면 자살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성능 듀얼클러치 변속기와의 조합은 필수일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내심 자동변속기 모델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바삭바삭한 변속감과 기어를 바꿀 때마다 들리는 짜릿한 폭발음, 그리고 항상 으르렁거리는 현존 최고의 4기통 배기음은 진정한 드라이빙 머신의 요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의 드라이빙 머신’을 만든다는 독일의 명차 브랜드에서 30년 간 잔뼈가 굵은 스타 엔지니어가 동방의 작은 나라에 있는 싼 차 전문 메이커에 들어와, 이제는 사라져가는 진짜 ‘드라이빙 머신’을 재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카매니아인 기자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벨로스터 N은 많이 팔릴 모델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이미지를 끌어올려줄 아이콘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N 뱃지가 벨로스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델에 달려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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