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두 기둥, 일과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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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두 기둥, 일과 사랑 이야기
  • 교통뉴스 한명희 기자
  • 승인 2017.03.0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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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 철학박사, 루터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사춘기심리상담연구소장
 <칼 럼>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인류역사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 인생에는 중요한 두가지 기둥이 있다.
 
일과 사랑이다. 일과 사랑은 우리 삶의 두 축으로 살만한 가치를 느끼는 수단이 된다. 사람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를 의지하고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어 있다.
 
의존한다는 것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서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인간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홀로 선다는 것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지만 함께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를 키우면서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보면 스스로 사람구실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종종 들 것이다.
이러한 불안한 마음과 과보호는 자녀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틀을 가지고 태어난다.
 
스스로 가지고 태어난 자신의 색깔과 끼가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성장과정에서 도금화된 삶을 살아간다.
도금화는 부모의 눈치를 보며 자신다움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쳐도 무의식적으로 심리적인 위축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례허식을 중요시한다.
남에게 보여지는 것에 의해 생각이 변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자신감을 갖고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외부로 보여주는 일과 내면의 가치를 충족시켜 주는 사랑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일과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2년 전 경기도 oo시에서 성폭력 가해자를 상대로 집단상담을 한 적이 있다.
참석자 14명은 모두 남성들이었고, 나이는 20대부터 60대초반의 다양한 연령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에게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미혼자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혼했거나 결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중독적 성향 때문인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순간순간 모면하는 삶을 살아왔고, 한끼한끼 먹고 사는 것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공허한 마음은 늘 자극적인 것에만 노출되어 왔던 것이다.
 
그들에게 꿈을 물어보았다. 한결같이 어릴적부터 한번도 꿈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답하였다. 말그대로 방치되어 살아온 것이다.
과연 그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없을까? 그건 아니다. 그들도 무언가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의식조차 하지 못한채 살아온 것 뿐이었다.
 
그중 가장 나이어린 참여자에게 꿈을 만들어줘도 되는지 의사를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강의 때 마시던 물병을 그의 앞에 두고 “오늘부터 물장사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이 물병은 500원정도 합니다. 물병을 만든 회사가 1년에 이 물병을 몇병을 파는지, 그 회사에 몇 명의 직원이 일하는지, 연 매출액이 얼마인지 알아보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하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대략적인 숫자로 추정해 보았다. 그의 눈빛이 긴장하고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삐딱한 자세를 고쳐 세우고 나를 응시하였다. 긴장한 그는 단순히 물병 하나로 생각했는데 수많은 직원들이 월급받고 운영된다는 자체만으로도 놀라움을 보였다.
 
일에 대한 필요성에 관한 설명에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이제껏 일에 대한 기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성폭력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인 외부적 요인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는 시간이 되었다고 피드백 하였다.
 
일, 진로선택은 놀이에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일을 잘 할까? 당연히 일을 즐기는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 하는 법이다.
 
놀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흥미를 유발하고 하면 할수록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요즘은 입시위주의 경쟁사회이다보니 놀이라는 개념 자체가 퇴색되는 느낌을 받는다.
 
많은 부모들이 주말도 없이 공부하는 모습을 갈망하는터에 잘 노는 자녀를 보고 감동받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역발상적 사고가 필요한 시기이다. 놀이도 아이들에게는 간접적으로 일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일은 재미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꿈과 목적없이 직업을 갖게 된다면 평생 돈벌이 목적의 일만하게 될 수도 있다.
 
자녀들이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면 자녀에게 맞는 놀이문화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개인마다 놀이개념에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성격이 다르고 타고난 기질도 다른 것처럼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놀이를 찾아주어야 한다. 직업을 놀이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의사놀이 장사놀이 선생님놀이 등 모든 게 놀이이다. 의사의 꿈을 가졌다면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의사선생님들의 진료현장에 참여하고, 사업을 하고 싶다면 어린이 벼룩시장에서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팔아보는 경험도 좋을 것이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보람을 느낀다면 자신의 진로선택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직업개념을 거창한 진로에서 찾기보다 놀이라는 작은 개념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일 잘하는 자녀, 사랑을 잘하는 자녀로 만들어라!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배필을 만나길 바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소망일 것이다.
좋은 직업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어릴적부터 내 아이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무언 중에 행동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부모들이 못 알아챌 뿐이다.
 
‘적응은 창조성의 천벌’이라는 말이 있다. 적응을 잘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맞지 않는 곳에 적응을 하는 것은 자신의 것을 외면하는 행위이며,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는 첩경인 것이다.
 
에디슨은 학교에서 몽상가로 불렸고, 학교 교육을 시키지 못하겠다고 포기하여 자퇴를 하였다. 만약 에디슨이 학교의 말에 무조건적 순종하는 아이였다면 오늘날의 에디슨은 있었을까?
아마도 그의 창조성은 다 파괴되었을 것이다. 에디슨의 간절함을 알아챈 부모에 의해 에디슨은 오늘날 문명의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 된 것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에너지를 잘 소화하는 사람이다. 놀이처럼 자신의 페르조나(가면)을 다 벗어버리고 일조차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마음을 다해 놀이하듯 집중할 때 창조성도 생기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내적인 힘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자기 일을 충분히 잘 소화하고 자기화시킨 사람은 좋은 배필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역량이 넘칠 때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게 된다. 그럴 때 비로소 돕는자의 역할인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이 타고난 생명에너지를 잘 개발해서 스스로의 만족감과 더불어 나라와 인류에 공헌하는 인물이 되도록 돕는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평생 가져야 할 일과 사랑은 부모의 기대나 의지보다 기대에는 못미치지만 자녀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하는 창의성에 중심을 두면 좋을 것이다.
 
지금은 창조성이 중요한 시대다. 세계적인 기업인 애플도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을 80% 채용하고 있다. 학원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때로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도 자녀의 창조성을 키우는 길이다.
창조성을 키워 놓으면 훌륭한 자기창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정기  / 철학박사, 루터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사춘기심리상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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