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갈수록 치밀‧대범해지는 과적 수법, 손 놓은 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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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갈수록 치밀‧대범해지는 과적 수법, 손 놓은 당국
  • 교통뉴스 김 하영 기자
  • 승인 2020.02.10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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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제보로 ‘골머리’..단속 차량엔 미행 붙어
비밀 채팅방서 불법정보 공유하며 단속 피해
불법행위 단속은커녕 과적 단속도 거의 없어
화물차가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나는 모습. 과적 수법은 갈수록 교모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교통뉴스 자료사진.
화물차가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나는 모습. 과적 수법은 갈수록 교모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교통뉴스 자료사진.

[취재: 교통뉴스 김하영 기자/ 사진: 민준식, 박효선 기자]

과연 통계상 수치 그대로 실제 도로 위의 과적 차량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결론을 내려도 좋을까. 과적 단속 업무만 10년 이상 해왔다는 취재원들은 하나같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늘었으면 늘었지, 절대로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과적 차량은 여기(검문소) 안 와요.”

이들은 과적 단속 실적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으로 과적 행태가 고도로 지능화된 점을 꼽았다. 과적 검문소가 있는 도로를 우회하는 수법은 이미 널리 알려진 고전적인 방법이다.

“여기(검문소) 지나가는 차는요, 사실 검문할 필요도 없는 양심적인 차라고 보시면 돼요. 여기 지나가다가 단속 당하는 차는 어쩌다보니 1t 조금 넘어서 과태료 내는, 어떻게 보면 좀 안타까운 케이스들이 많아요. 실제 우리가 잡아야 하는, 10t 넘게 마음 먹고 과적한 차들은 여기로 안 오죠.”

애초에 고의적으로 과적한 차량들은 인적이 드문 야간에 단속이 거의 없다시피 한 국도 등으로 우회해서 가기 때문에 검문소에서는 잡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동식 단속이 필수적인데 인력도, 장비도 부족한데다가 이동식 단속을 피하기 위한 각종 수법들 때문에 이제는 이동식 단속도 쉽지 않다고 취재원들은 입을 모아 전했다.

본지 민준식 기자도 지난해 1월 SBS와 공동으로 취재한 고속도로 과적차량 단속 현장에서 치밀하게 움직이는 과적차량의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위험할 뿐만 아니라 현행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아래의 실제 사례들은 전부 취재원들의 제보를 재구성한 것들이다.

 

[사례1] 가짜 제보로 허탕 치는 동안 우회도로로 지나가는 수법

‘과적한 것처럼 보이는 화물차가 OO 방면으로 가고 있으니 얼른 단속해달라’는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공무원들은 민원에 응답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민원이 들어오면 일단 무조건 이동식 단속 차량을 타고 현장으로 출동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출동해 보면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그 민원 전화가 허위 제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도 소용없다. 이미 ‘진짜’ 과적 차량은 이미 다른 우회도로로 유유자적 통과한 뒤다.

이 수법은 단속 인력이 부족한 실정과 민원에 응답해야만 하는 공무원의 법률상 의무를 악용한 것인데 허위 제보로 특정 지점에 단속인력이 집중되게 한 뒤 다른 지점에 대한 단속이 느슨해진 틈을 타 지나가는 것이다.

단속 담당 공무원들은 “허위 제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민원에 응답해야만 하는 법률상 의무가 있기 때문에 단속을 나가지 않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사례2] 이동식 단속 차량에 끈질기게 따라붙는 미행, ‘칸보이(convoy)’

본지 취재 중 포착된 칸보이(Convoy)로 의심되는 차량. 교통뉴스 자료사진.
본지 취재 중 포착된 칸보이(Convoy)로 의심되는 차량. 교통뉴스 자료사진.

이동식 축중기를 차에 싣고 단속을 나가는데 사이드미러로 아까부터 웬 택시 1대가 계속 따라오는 게 보인다. ‘우연히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가나 보다’하고 그냥 넘기기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이동식 단속 차량 꽁무니에 끈질기게 따라붙는 게 영 수상쩍다.

오늘은 택시가 붙었지만 어떤 날은 일반 승용차가 붙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화물차가 꼬리에 붙는다. 양쪽으로 차량 2대가 붙는 날도 있다. 악착같이 붙는 미행 차량 때문에 위험한 상황도 자주 겪는다.

그런 날은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해봤자 별 소득이 없다. 과적 차량은 이동식 단속 차량에 붙여놓은 미행을 통해 실시간으로 단속 정보를 전달 받아 다른 도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수법을 ‘칸보이(convoy, 호위대라는 뜻)’라고 부른다. 단속 차량에 ‘호위대(convoy)’를 붙였다는 뜻으로 쓰이는 업계 은어다.

이 경우에도 단속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아무리 ‘칸보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도 직접적인 증거를 잡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런 경우에 대비한 구체적인 단속‧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미행 차량 때문에 접촉사고가 날까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화물운송업계 관계자는 “이 쪽 업계 사람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결국은 돈 때문이 아니겠나, 택시 기사한테 일당을 떼어줘도 남는 게 있으니까 계속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례3] 네이버밴드에서 단속 정보 공유...변호사법 위반 소지

본지는 취재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과적 수법과 단속 정보, 그리고 단속되었을 경우 법적 대처 요령까지 알려주는 비공개 네이버 밴드(BAND)가 화물차주들 사이에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비공개 밴드이기는 한데 지금도 알아보려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죠. 화물차 운전하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거의 다 알 걸요.”

해당 밴드는 유료로 운영되고 있어 밴드에 가입하려면 2019년 기준으로 월 회비 2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실명과 차량번호를 인증하면 가입할 수 있는데 빠른 시일 내에 ‘셀카’(셀피, Selfie, 얼굴 사진) 인증까지 마치지 않으면 밴드에서 쫓겨난다.

‘셀카 인증’은 내부 고발자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해당 밴드에 가입한 인원은 2000~3000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밴드 운영 수익은 대략 월 5000만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제보에 따르면 해당 밴드 운영자는 대구광역시 거주 남성으로 화물차주들 사이엔 전직 과적 단속 공무원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해당 밴드에서 이뤄지는 각종 과적 수법이나 단속 정보 공유는 물론 법률상담은 모두 불법이다. 특히 법률상담은 변호사법상 ‘변호사가 아닌 자가 금품 등을 받고 법률사무를 취급하거나 이러한 행위를 알선한 자’에 해당해 변호사법위반죄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단속과 처벌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고 현재도 네이버밴드는 비밀리에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법 아닌 ‘불법’인데도 처벌 손 놓은 정부..과적 수법은 날로 ‘대범’

이밖에도 지면 관계상 전부 열거할 수는 없었지만 취재원들이 설명해준 각종 과적 수법들은 기상천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법을 관통하는 한 가지 키워드가 있었다. 대부분의 과적 수법들이 명백한 ‘불법’인데도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이버밴드에서든, 귀동냥으로든 얻어 들은 각종 수법으로 도로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는 용케 피해갔을지 몰라도, 그 자체가 편법이 아닌 불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음에도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한 허위 제보의 경우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이지만 실제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처벌 규정이 있어도 범죄를 입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공무원이 민원인을 고소하는 모양새가 되다보니 형사고소까지 가기가 쉽지가 않다. 안 그래도 부족한 일손인데 입증하기도 어려운 허위 제보 하나 잡아내려 고소에 매달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허위 제보는 가장 쉽고도 흔한 과적 수법 중 하나로 자리 잡고 말았다. 다른 수법들 역시 이렇게 처벌이 전무한 채로 넘어가다보면 불법이 일상처럼 공공연한 수법으로 자리 잡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실질적인 단속권이 있는 경찰과 국토부는 사실상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그나마 단속을 제대로 하고 있는 기관은 전국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 정도다. 그나마 도로공사는 사법권이 없는 공기업이라 실제 단속은 경찰에 신고해 이뤄진다.

공권력을 비웃는 위법자들과, 실효성이 없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관계당국의 무능이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당국은 해마다 도로를 땜질하고, 운전자들은 통제불능의 무서운 괴물과 함께 도로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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