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틀림’을 강조했던 그랜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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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틀림’을 강조했던 그랜저의 변화
  • 교통뉴스 민준식 부장
  • 승인 2019.11.1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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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변신을 택한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풀체인지급 외관 변화와 고급스러운 실내
원숙기에 들어선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
파격적인 변화를 거친 그랜저가 공개됐다. 사진: 민준식
파격적인 변화를 거친 그랜저가 공개됐다. 사진: 민준식

새롭게 바뀐 그랜저를 설명한 이상엽 전무는 이번에는 후드티와 청바지 대신 검은색 정장을 뽐내고 나왔다. 그만큼 그가 강조하는 과감한 변화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한 눈에 들어왔다. 그는 ‘틀림’이라는 틀린 표현을 써가면서 다름을 강조했다.

우리말 구어체에서 ‘다르다’를 표현할 때 흔히 쓰이는 ‘틀리다’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달라진 그랜저를 설명하려고 했던 이상엽 전무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왜 ‘틀린’ 표현을 써가며 공식석상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까 갸우뚱했다.

검은색 아웃핏의 이상엽 전무. 사진: 민준식
검은색 아웃핏의 이상엽 전무. 사진: 민준식

그 답은 바로 차에서 다 볼 수 있었다. 60mm 길어진 차체는 앞뒤 축간거리도 40mm가 늘어났다. 이 차이는 승차감의 차이로도 바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크다. 쏘나타와 그랜저의 휠베이스 차이가 40mm다. 댐퍼와 스프링의 강도 차이도 있겠지만 길이 차이에 따른 거동 특성 또한 크게 다가온다.

이번 그랜저는 6세대 IG 모델의 페이스리프트, 즉 부분변경이다. 그런데 페이스리프트는 말 그대로 얼굴만 조금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차는 휠베이스가 늘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C필라가 완전히 달라졌고 지붕의 모양도 딴판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트렁크와 옆면 펜더도 완전히 다르다.

보통 다른 메이커들은 이를 풀체인지라고 한다. 플랫폼은 기존 것을 사용했더라도 크기를 늘리고 지붕, 옆면 등 차체의 얼개를 바꾸는 작업을 하면 풀체인지의 범주에 들게 된다.

이상엽 전무는 디자인을 설명하면서 센슈어스 스포티니스라는 현대차의 디자인 언어를 표현하는 헤드램프와 그릴이 하나로 된 최초의 양산차라고 강조했다. 그릴 속으로 헤드램프가 파고 들어간 모습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아반떼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상엽 전무는 사전공개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지나가는 말처럼 들렸지만 그는 다른 디자이너가 했던 작업을 ‘덜어내는’ 뒷정리 일을 했다고 했다. 좋게 말하면 공을 열심히 디자인 한 후배들에게 돌린 것이겠지만, 어찌 보면 너무 나간 디자인을 수습했다고도 들릴 수 있다.

아반떼의 난해한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 난해함을 컨셉트카 ‘르 필 루즈’의 얼굴에 최대한 대입하면서 수습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황스러운 디자인의 아반떼와 현대의 컨셉트 르 필 루즈. 사진: 민준식
당황스러운 디자인의 아반떼와 현대의 컨셉트 르 필 루즈. 사진: 민준식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앞모습은 기자의 개인적 취향으로는 매우 잘 정리돼 보였고, 마름모꼴 패턴이 잘 배치된 연속성이 돋보이는 뛰어난 디자인이다. 그러나 ‘마름모’의 향연, 삼각떼의 재림, 잉어 몸뚱아리 등 다양한 비평을 들을 수 있었다. 이상엽 전무의 ‘틀려도 다르게’라는 메시지일까?

르 필 루즈 컨셉트를 적용하고 아반떼의 난해한 디자인을 정리한 앞모습. 사진: 민준식
르 필 루즈 컨셉트를 적용하고 아반떼의 난해한 디자인을 정리한 앞모습. 사진: 민준식

옆모습은 이견이 없다. 길어진 차체가 더 나은 비례감을 준다. 각이 진 모양의 C필라 오페라 윈도우도 전작에 비해 훨씬 고급스럽고 안정감이 있다.

뒷모습도 마찬가지다. 전작에 비해 뒤로 갈수록 더 좁아지는 그린하우스(지붕)와 빵빵한 펜더가 꽤나 스포티한 스탠스를 보인다. 제네시스 G70의 뒤태만큼이나 강렬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구형과 신형 그랜저의 뒤태 비교. 사진: 민준식
구형과 신형 그랜저의 뒤태 비교. 사진: 민준식

다른 차를 표절했다는 비판도 들었던 테일램프는 그랜저만의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스포일러처럼 양각으로 튀어나온 가로로 이어지는 테일램프는 뒤태의 하이라이트다.

실내공간은 올 뉴 그랜저의 시그니처이자 하이라이트다. 컬러, 질감, 자재, 그리고 만듦새까지 흠잡을 곳이 없다. 제네시스는 얼마나 더 고급스럽게 만들려고 아래급 대중차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파가죽은 한없이 부드럽고 쿠션은 몸을 잘 감싸면서 받쳐준다.

실내는 차급을 불문하고 최고 수준이다. 사진: 민준식
실내는 차급을 불문하고 최고 수준이다. 사진: 민준식

실내공간은 그랜저의 최대 장점이다. 원래 넓었던 실내가 더 넓어졌다. 이정도 실내 수준이면 공직에 계시는 고위 공무원 중 기사를 쓰시는 분들은 비싼 제네시스 대신 이 차를 타셔도 되겠다. 차 안을 보면 6천만 원 이상 나가는 차의 값어치를 한다.

이정도 차급이면 손이 닿는 부분이나 상단부는 가죽 등 고급재질을 쓰지만, 하단부는 값이 싼 플라스틱으로 마감한다. 그런데 그랜저는 이 플라스틱이 잘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전면 크래시패드는 나파가죽과 금속재로 마감돼 있다. 그리고 재질이 바뀌는 부분에 금속으로 장식을 했다. 상단은 가죽, 중간에 금속재(금속 느낌이 나는) 그릴과 장식, 그리고 다시 가죽 패딩, 금속 장식, 그리고 플라스틱 마감이 보이지 않게 안으로 숨겨져 있다.

도어패널도 가죽과 플라스틱 사이에 금속재 마감(재료분리대)이 되어있어 고급재질을 더 부각시키는 똑똑한 디자인을 했다. 차갑고 거친 마감은 숨기고, 고급스럽고 따뜻한 마감재는 한껏 부각시킨 것이다. 자동차 실내 디자인의 모범적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이다.

고급재질은 강조되어 있고 싼 재질을 숨겨져 있다. 사진: 민준식
고급재질은 강조되어 있고 싼 재질은 잘 숨겨져 있다. 사진: 민준식

시승차는 예전과 같은 6기통 3.3리터 직분사 람다엔진이다. 290마력의 강한 힘을 꽤 고회전인 6,400rpm에서 내고, 35kg-m의 최대토크도 5,200rpm에서 나온다. 전형적인 고회전형 엔진이다. 그래서 정지상태에서의 출발은 조금 굼뜬 면도 있다. 이 엔진은 3천 rpm 이상 올려야 힘을 내기 시작한다.

승차감은 더 뉴 그랜저의 최대 강점이다. 특히 IG에서 뒤가 많이 튄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를 완전히 개선했다. 노면과 함께 빨리 아래위로 움직이던 거동이 많이 느려졌다. 서스펜션이 노면 충격을 많이 걸러준다는 뜻이다.

고속으로 포장상태가 안 좋은 길을 달리면서 급코너링을 했는데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부드러운 서스펜션 때문에 차체가 들리면서 떠올랐는데 바퀴는 노면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서스펜션이 최대로 늘어나면서 차체는 노면과 단절됐지만 바퀴는 노면에 붙어 아래위로 쉼 없이 움직이면서 충격을 흡수했고, 타이어는 그립을 잃지 않으면서 차는 안정적으로 돌아나가는 것이다.

3.3모델의 주행성능은 만족스러웠다. 사진: 민준식
3.3모델의 주행성능은 만족스러웠다. 사진: 민준식

전동모터가 엔진룸 내부 스티어링 랙에 장착된 랙타입 MDPS(전동식 스티어링)는 민첩하지는 않았지만 부드럽게 반응했고, 적당한 ‘손맛’을 줬다. 조금 더 무겁고 조금 더 민감했으면 완벽했을 것이다.

페이스리프트이기 때문에 쏘나타의 3세대 플랫폼보다 구형인 2세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섀시이지만 신형 그랜저의 차체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승차감과 핸들링의 밸런스를 가졌다.

트랜스미션의 반응은 사실상 이를 공유하는 기아 K7보다 빨랐다. 기어 변속과 반응 모두 독일차만큼 빠릿빠릿함은 물론 동력손실도 거의 없었다. 3명이 탑승하고도 힘찬 가속성능을 보였고, 잘게 쪼개진 기어비를 가진 8단 변속기가 부지런히 기어를 바꾸며 속도를 높였다.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의 주행소음을 잡기 위해 유리 전부를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썼고, 19인치 휠의 경우 노면소음의 공명을 막아주는 장치를 추가했다. 엔진음도 잘 차단됐고, 풀가속을 해 엔진 회전수가 많이 올라가야 6기통 엔진 특유의 트럼펫 부는 화음이 들려왔다.

너무 조용하다보니 공명음을 방지했다는 휠타이어에서 들려오는 노면소음이 오히려 더 부각됐다. 특히 오래된 노면을 지날 때, 크지는 않지만 거친 마찰음과 진동음이 약간 거슬렸다. 이런 소음이 흡차음재와 각종 NVH 대책으로 덮인 신형 그랜저의 실내로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차의 장기인 반자율주행과 주행보조 시스템은 더욱 진화했다.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유지함은 물론 앞차와의 거리를 지키면서 완전 정지도 하고, 과속카메라나 곡선구간에서는 내비게이션 맵과 연동해 미리 속도도 줄여주는 HDA 기능이 전국 자동차전용도로(신호등 없는 도로)까지 확대됐다. 이 기능은 국내 출시된 모든 차종 중 가장 뛰어나다 할 것이다.

길어진 차체는 비례감이 뛰어났다. 사진: 민준식
길어진 차체는 비례감이 뛰어났다. 사진: 민준식

더 뉴 그랜저는 4가지 엔진 라인업으로 나온다. 예전 세타2 엔진을 대폭 개선한 198마력의 2.5리터, 235마력을 내는 6기통 3리터 LPG 엔진이 장착된 3.0 LPI, 최상급 버전인 3.3 GDI와 2.4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LPI 모델을 제외하면 모두 시승차와 같은 호화로운 캘리그래피 트림을 고를 수 있다.

2.5 가솔린모델의 경우 3,294만 원부터 시작하며, 최상위 트림인 시승차의 가격은 4,663만 원이다. 4기통 모델도 최상위 트림을 선택할 수 있어 가격인상폭은 최대 500만 원이 넘어가지만, 캘리그래피 트림은 예전 3.3 풀옵션 트림의 모든 편의사양을 갖춘 그야말로 최상급 모델이기 때문에 가격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캘리그래피 트림이 아닌 일반 트림으로 비교해보면 예전 모델과의 가격차이는 최소 59만원까지 줄어들게 된다. 풀체인지에 가까운 변화를 감안하면 가격인상폭이 그다지 크지 않다. 아직 3,500만 원대의 그랜저를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신기한 기능, 좋은 오디오를 선택하면 찻값은 올라간다.

발표회장에서 공개한 신형 그랜저의 광고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성공의 기준’이었다. 그랜저가 성공한 사람을 뜻하는 차일까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전의 웅장한 Grandeur는 21세기 들어 조금 고급스러운 패밀리카가 됐기 때문이다.

성공의 잣대가 차가 아님은 분명하지만, 자동차가 사회적 신분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그랜저는 충분히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차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경쟁이 없다. 이 가격에 이 상품성을 가진 차가 없다. 몇 달 전 출시된 K7의 뛰어난 상품성에 놀랐는데 이 녀석은 경이롭다.

차를 가지고 남들에게 자랑하려면 이보다 더 좋은 차 많이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가격에 사기급 스펙과 편의사양, 그리고 감히 도전장을 내밀 수 없는 실내공간을 갖춘 그랜저는 무척 가지고 싶은 차다. 또 카탈로그만 여러 번 정독했다.

틀려도 다르면 된다는 디자이너 이상엽의 메시지가 다시 떠오른다. 틀리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만 ‘다름’을 이루는 데에는 분명 성공했다. 이 독특하면서 잘 만들어진 차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사전계약을 받은 지 11일 됐다는데 이미 3만2천여 대가 팔렸다고 한다. 답은 이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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