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파일럿 시승기 - 또 하나의 아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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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파일럿 시승기 - 또 하나의 아빠차
  • 교통뉴스 민준식 부장
  • 승인 2018.12.2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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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로 타본 또 하나의 대형 SUV
현대가 미국 시장에 사활을 걸고 팰리세이드라는 역작을 만들며 미국 패밀리 SUV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국내에 먼저 선보인지 며칠 후, 현대차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남양 연구소의 영빈관으로 쓰이는 화성 롤링힐스에서 혼다 코리아가 플래그십 SUV인 파일럿 페이스리프트를 선보였다. 일주일 사이에 성격이 비슷한 두 차를 타보게 되니 자연스레 비교를 하게 되었다. 원조 ‘아빠차’로 명성이 높은 혼다 파일럿을 만나보았다.
 
혼다 코리아가 더 뉴 파일럿을 선보였다. 사진: 박효선
 
현대자동차가 칼을 갈면서 경쟁차 팰리세이드를 개발하던 남양연구소를 내려다보는 낮은 구릉 위에 있는 롤링힐스에서 혼다의 플래그십 SUV인 파일럿을 만날 수 있었다.
 
파일럿은 길이가 미터가 넘고 폭도 거의 2미터에 달하며 높이 또한 키 큰 어른의 신장과 비슷한 1.8미터에 육박한다. 일주일 전 타본 팰리세이드와 거의 비슷한 덩치다.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는 파일럿. 사진: 박효선
 
모든 메이커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파일럿의 인테리어 설계는 명불허전이다. 예전모델과 동일하게 시원한 시야와 편안한 시트, 마술처럼 접을 수 있는 2-3열 시트는 명가의 작품답다. 특히, 복잡한 기계장치 없이 쉽게 접히는 시트는 인상적이었다.
 
시트는 편하고 몸을 잘 잡아준다. 감촉도 부드럽고 편안하다. 스위치 배열과 위치, 작동질감은 업계 표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처음 접해보는 사람도 한 번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위화감이 없고 친숙한 인터페이스다. 혼다는 이 것을 잘한지가 30년이 넘었다.
 
넓은 인테리어와 시트배열은 이 급의 교과서다. 사진: 박효선
 
곳곳에 심어놓은 컵홀더 또한 쉴 새 없이 마셔대는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설계다. 2열은 문에 두 개, 독립된 시트 사이 바닥에 두 개의 컵홀더가, 3열에도 좌우로 3개의 컵홀더가 있다. 컵홀더에 음료수 컵을 놓으면 한 가족이 24시간 이상 버틸 액체를 실을 수 있겠다.
 
2열에 주로 타고 갈 아이들을 위해 스크린과 DVD 플레이어도 준비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운전하는 아빠를 방해하지 않도록 따로 헤드폰까지 두었다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2열 아이들을 위한 TV. 사진: 박효선
 
눈에 밟히는 것은 다소 저렴해 보이는 마감재였다. 아니, 그만큼 우리의 눈이 높아진 것이다. 애초부터 미국의 패밀리카에 쓰이는 마감재의 수준은 높지 않았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닌 일반 브랜드에서 나오는 패밀리카의 마감 수준은 거기서 거기. 파일럿은 딱 그런 수준의 마감재가 쓰였다.
 
문제는 일주일 전 타본 현대의 팰리세이드가 그 수준을 프리미엄급으로 올려버렸던 것이다. 일주일 만에 타본 글로벌 경쟁차의 마감 수준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차세대 파일럿의 마감재 수준은 많이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기술의 혼다가 만든 6기통 엔진이 돌기 시작하면 실망감이 안도감으로 바뀐다. 깔끔하고 부드러운 음색의 6기통 바리톤 음은 회전수가 올라가면서 우렁찬 울림과 강력한 파워로 다가온다. 고 rpm으로 계속 밀어주는 가솔린 엔진의 힘이 느껴진다. 고회전에서도 전혀 스트레스를 받는 느낌이 없는 음색은 혼다 엔진의 특성이다.
 
직분사 방식과 혼다 특유의 가변밸브 컨트롤 시스템인 VTEC을 채용한 이 3.5리터 엔진은 284마력의 힘을 내며 필요할 때 한쪽 실린더 뱅크 3기통에 연료 공급을 끊어 연비를 높이는 방식도 쓰고 있다.
 
혼다의 V6 VTEC 엔진은 명품 그 자체다. 사진: 박효선
 
그런데 ZF의 9단변속기가 그 재미를 조금 깎아먹었다. 자동모드에 놓고 달리면 기어를 올릴 때의 반응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킥다운을 통해 기어를 내릴 때는 역시 한 박자 느렸고, 수동모드에서의 반응은 아직도 좋지 않았다. 차라리 기존 6단 변속기가 더 나을 것 같다.
 
계측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로백 성능은 7초 후반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오토모드에서는 변속이 굼뜨지 않았고 슬립이 나서 동력이 손실되는 느낌도 거의 없었다.
 
댐핑 스트로크가 길어 바퀴의 상하 움직임을 크게 잡은 서스펜션은 험한 길을 갈 때 느낌이 좋았다. 댐퍼 또한 자유진동을 잘 잡아줘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넉넉한 스트로크의 서스펜션은 충격 흡수력은 좋았으나 고속에선 불안했다. 사진: 박효선
 
그런데 고속주행을 할 때는 상하 움직임이 많은 서스펜션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급차선 변경을 할 때 차체는 허둥댔고 고속 코너링을 하면 타이어가 접지를 쉽게 잃었다. 패밀리카로 난폭운전을 하는 것은 맞지 않지만 필요할 때 그 한계가 낮은 점은 분명 핸디캡이다.
 
20인치 컨티넨털 타이어의 접지력은 아쉬움이 남았다. 사진: 박효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체 거동이 흐트러지기 전에 느껴지는 밸런스와 스티어링휠을 통해 전해지는 피드백은 좋았다는 것이다. 이는 수십 년 좋은 차를 만들어온 메이커의 노하우가 그대로 녹이 있는 부분이라 그럴 것이다.
 
노면상태가 좋지 않기로 악명 높은 서해안 고속도로와 화성시 일대 국도를 누빈 파일럿의 실내는 매우 조용했다. 6기통 엔진의 부드러운 엔진음은 물론이요 바퀴에서 전달되어오는 노면의 거칠음이 잘 걸러졌기 때문이다. 시승 내내 소음 스트레스는 없었다.
 
일상적인 주행성능은 흠잡을 데 없었다. 사진: 박효선
 
앞 차를 감지하고 차선을 읽어 알아서 달려주는 혼다센싱도 뛰어난 기능을 가졌다. 차선 인식과 앞 차 감지를 잘 했고 특히 지나친 경보음을 남발하지 않고 조용히 스티어링 휠에 진동을 가해 운전자의 주의를 끄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일주일 전 온갖 경보음과 핸들을 잡으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던 현대차가 비교됐다.
 
브레이크 성능도 좋았다. 페달이 밟히는 깊이는 꽤 있는데 제동력이 잘 분배돼 있어 점진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초반에 제동력이 몰려있지 않고 밟을수록 강해지는 제동력이 믿음직했다.
 
시승차의 가격은 5,950만 원이다. 이정도 크기의 수입 SUV 가격이다. 그리고 깔끔한 주행성능을 가졌다. 이 급에서 왕좌라 할 수 있는 포드의 익스플로러에 비하면 그렇다.
 
독보적인 상품성을 자랑하던 파일럿이 강적을 만났다. 사진: 박효선
 
그런데 이 세그먼트에 갑자기 국산차 하나가 뛰어들었다. 국산차답게 가격이 착하다. 이전에는 가격이 착한만큼 포기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가격과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상품성을 갖췄던 팰리세이드를 기억하면 갑자기 이 차가 조금 밀리는 듯 보인다.
 
검증된 상품성과 성능으로 패밀리 SUV의 본거지인 미국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혼다 파일럿이 국내에서 난적을 만났다. 국내는 출시하자마자 2만대를 팔아치운 국산차와의 비교가 돼버렸다. 그런데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서도 상당한 도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크기, 비슷한 구성과 가격대의 동일 세그먼트 차량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에서 혼다 파일럿의 셀링 포인트는 검증된 메이커의 명품 엔진과 검증된 품질, 그리고 뛰어난 실내구성을 갖춘 명품 SUV라는 것이다. 가격차를 무시하고 이 좋은 차를 고를 고객은 분명이 존재할 것이다.
 
미국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대형(그들 기준으로는 미드사이즈) SUV 시장에서 경쟁하는 차들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실내마감이나 상품성이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다. 앞으로 이 부분이 많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차 잘 만들기로 유명한 혼다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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