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소년과 북 치는 재즈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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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소년과 북 치는 재즈 피아니스트
  • 교통뉴스 한명희 기자
  • 승인 2017.01.3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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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소년과 북 치는 재즈 피아니스트
 
 
1866년 / 유화 / 캔버스에 유채 / 161 x 97 cm / 오르세 미술관 소장
 
몇 해 전 가을, 나는 파리 뒷골목을 기웃거리며 작은 갤러리와 공방 들을 탐방하고 다녔다. 낯선 골목을 헤집듯 다니는 일은 내 여행의 방식이자 탐험의 일부였다. 새로운 형식과 시도로 가득 찬 그림과 사진, 조각, 가구, 골동품 들과 예술품에 버금가는 공예품을 보며 평범한 일상에 신선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이었다. 규모나 작품 수는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비해 형편없이 작고 적을 테지만 수준은 그에 못지않았다. 그렇게 계획 없이 쏘다니다가 우연히 다다른 곳이 오르세Orsay 미술관이었다.
 
파란만장한 오르세 미술관
뜻밖의 조우는 나를 고민에 빠트렸다. 따로 일정을 잡아놓은 걸 떠올리며 다시 골목으로 돌아갈 것인가, 눈 앞에 선 미술관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말이다. 결국, 설레는 만남을 필연에 따른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번거롭게 다시 올 바에야 마주쳤을 때 들어가는 게 현명할 듯도 싶고. 한 시간 넘게 땡볕에 줄을 섰던 루브르Louvre 박물관과 달리 의외로 한가한 티켓박스도 유혹적이었다. 기다림도 없이 여유롭게 입장하면서 미술관이 나를 불러들인 게 분명하다고 믿게 되었다.
 
오르세 미술관이 어떤 곳이던가? 1804년에 최고재판소로 지어졌다가 영문도 모르게 불에 타 없어졌었고, 다시 그 자리에 기차역을 지었으나 또다시 문을 닫았고 말았으며, 한동안 쓸모를 잃은 채 비어있다가 9년이란 시간을 공들인 끝에 1986년 지금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개관한 산전수전 다 겪은 역사적 공간이지 않은가. 파란만장한 사연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마네와 밀레, 마티스, 드가, 르누아르, 세잔, 고갱, 고흐 등 인상파 작품과 카바넬, 뒤랑, 라투르, 쿠르베 같은 작가들의 사실주의 작품을 소장한 세계 최고 미술관. 예술에 문외한이 아니라면 죽기 전에 한번쯤 꼭 가고 싶은 곳 중 하나이리라. 물론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 Orsay라고 큼지막하게 박힌 입간판 앞에 섰을 때 이미 마음은 절반쯤 미술관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에 사로잡혀서
갑작스런 조우는 예정보다 이르게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피리 부는 소년> 앞으로 인도했다. 아름다운 색채와 색조, 섬세한 질감은 온종일 이방의 뒷골목을 쏘다니느라 지친 나를 위로했다. 역시, 인상주의 작가인 마네의 작품다웠다. 황금색 단추와 수술 장식을 단 검은 모자와 재킷,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붉은 바지, 흰 색 장식은 눈을 압도하며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관람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제법 긴 시간을 머물렀다. 뭔가를 기록하거나 스케치 하는 이들도 많았다.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나도 그들처럼 소년 앞에 서서 천천히, 오래도록 보았다. 문득, 그림에 배경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색만으로 가득 채워진 배경을 통해 인물을 부각시킨 그의 구성은 공간으로 배경을 표현하던 전통적인 초상화 그리기의 규칙을 서슴없이 깨트렸다. 어쩌면 그에게 도전은 전통을 깨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초상화가 정면을 응시하는 것과 달리 피리 부는 소년은 관객과 시선을 어긋난 방향으로 보내고 있었다. 더 자세히 보면, 입술과 손가락은 피리를 부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떤 한 순간이나 행동을 포착하려는 마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기존의 전통적 회화 수법을 거부하고 전복시킨 마네. 그런 그는 인상파의 정신적 지주였다. 회화가 전통주의로부터 서서히 힘을 잃어갈 즈음, 그는 새로운 시대를 불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자신의 작품을 프랑스 화단으로부터 인정 받는 일이기도 했던 살롱전에는 한번도 채택되지 못했다. 그는, 그의 작품은 그렇게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힘이 빠지긴 했으나 전통적인 회화는 여전히 허물어져가는 시대의 주인이었다.
 
당대의 큰 논란을 일으킨 올랭피아처럼
<풀밭 위의 점심>, <에밀 졸라의 초상>, <올랭피아> 등 마네의 명작들도 놓치지 않고 감상했다. <피리 부는 소년>은 파리의 매춘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올랭피아>만큼이나 당대에 큰 논란을 일으켰고, 전통주의 회화로부터 배척 당한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제목과 달리 실제 모델은 여자라는 주장도 놀라움 중 하나였다. 그녀 이름은 빅토린 뫼랑. 그녀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화가이자 모델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작품은 세상 밖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상파 회화의 역사 속에 생생한 표정과 몸짓으로 존재한다. 마네 최고의 걸작이자 당대 최대의 문제작이었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올랭피아> 또한 그녀가 모델이었다. 뫼랑은 1862년 마네의 <거리가수>를 시작으로 1874년까지 십여 년 동안 마네의 모델로 활동하며 위대한 작품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그러나 마네는 그녀를 등장시킨 화제작을 발표할수록 오히려 곤경에 빠졌고,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화단으로부터 갖은 수모와 조롱을 겪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 이후 인상파는 도래한 거대한 시대의 큰 물결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진실을 알기 전까지 우리는 진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유랑한다. <피리 부는 소년> 속 소년을 보며 여성을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듯이. 여성성이 느껴지기 보다는 붉은 볼을 가진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모습만을 어렴풋이 감지할 뿐이다. 어쩌면 나는 이 작품에 감춰진 모호함에 빠져 그토록 오랜 시간을 서있었을까? 해독하고 싶으나 그럴 능력이 없어 그저 당황하고만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많은 회화 작품이 하나의 전경으로써의 순간을 포착한 것과 달리 마네의 그림은 예상치 못한 감정의 순간을, 어떤 찰나의 행위를 잡아 가뒀기에 그토록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던 건 아닐까? 그토록 보고 싶었던 작품을 본 뒤 서울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이 소년과 마네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림이 불현듯 떠오른 건 파리에서 돌아온 지 몇 개월이 흐른 뒤였다. 여느 주말처럼 푹 자고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레코드판을 꺼냈을 때였다. 우연히 손에 잡힌 앨범은 Chick Corea의 <Tap Step>이었다. 이름 덕에 우리에게 꽤 친근한 칙 코리아의 앨범커버를 보자마자 <피리 부는 소년>이 떠올랐다. 얼른 마네의 작품집을 꺼내어 코리아의 앨범 이미지와 비교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색채와 색조가 무척 유사했다. 붉은 장식과 흰 단추가 달린 검은 코트와 검은 바지. 그리고 검은 신발, 붉은 모자, 흰 색으로 된 북을 매단 끈까지 소년과 판박이였다. 그 뒤로 <피리 부는 소년>을 보면 <Tap Step>이 생각났고, 코리아의 음악을 들으면 마네가 떠올랐다. 단순히 색채나 이미지가 품은 유사함 때문에 두 가지를 동일시 하게 된 건 아니었다.
 
Chick Corea / Tap Step(1979) / GRP-Stretch/MCA
 
마네와 칙 코리아 사이에 무엇이
칙 코리아는 또 인물이던가? 퓨전재즈 역사에서 이 사내를 빼놓고 얘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퓨전재즈의 중요한 순간마다 홀연히 등장하는 그는 단순히 우리에게 익숙해져서 친밀한 음악인만은 아니다. 그는 뛰어난 재능으로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음악에 불어넣었으며, 재즈의 다양성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몽상가이다.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어쿠스틱 피아노와 일렉트릭 건반을 오가며 타고난 도전정신과 상상력을 엮어 놀랍고 흥미로운 연주를 들려준다. 소년 시절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20대 중반에 이미 블루 미첼, 윌리 보보, 허비 만, 칼 제이더, 스탄 게츠 등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과 협연하고 녹음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마네가 그랬듯이 코리아도 기존의 세계를 허물었다. 다양한 시도와 가능을 섞고 뒤적이고 흔들어서 같지만 다른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음악 면면을 살펴보면, 늘 새로움을 시도하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온갖 타악기가 등장하는 이 앨범에서도 그가 펼쳐 보이려는 세계는 여지없이 등장한다. 재즈와 클래식, 현대 음악 속 화성을 차용해 즉흥 연주라는 낯선 틀 속에 포갠다. 이렇듯 그는 재즈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익숙한 것을 전복시키려는 생각과 몸짓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가 낸 수많은 명반들이 이런 태도와 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시대에 타협하거나 안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길을 애써 찾아 다녔다.
 
마네나 칙 코리아는 익숙한 길보다는 낯선 길로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만의 생각과 행동으로 거대한 기존 질서와 가치에 도전했던 그들의 정신은 자신들의 작품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그림과 음악을 보고 들으며 감동한다.
 
 
레코드 플레이어에 칙 코리아의 <Tap Step> 레코드판을 올리며 오르세에서 만났던 피리를 부는 소년과 북 치는 재즈 피아니스트를 떠올린다. 어느새 상상은 시대를 초월하여 소년과 피아니스트가 거리에서 듀엣으로 연주하는 걸 바라보고 있다.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이들의 연주는 새롭고 도전적이며 격렬하다. 오래 전, 독일의 어느 거리에서 피아노를 박살내던 한 전위 예술가가 오버랩 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기연.
카피라이터.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 <삶은, 풍경이라는 거짓말>, <단어의 귓속말>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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